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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지는 않지만 편안한 이 곳, 후쿠오카.




일본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뒤 벌써 3년 반이 지났지만 매년 빠짐없이 일본에 한번이상 다녀오고 있다.

가깝고 비행기편도 많고 비교적 저렴한데다 음식도 잘 맞는 편이고 거리도 깨끗하고 공기도 상쾌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가장 만만한 후쿠오카에 또 가게 됐다. 볼만 한 건 어차피 다 봤겠다, 그냥 편안히 먹고 쉬고 놀고 마시고, 필요한 것 좀 사 갖고 오자는 게 목적이었다.

3박 4일 일정에 경비는 비행기 값 포함 50만원. 비싼 식당이나 고급 호텔을 거부하는 생리적인 성향 때문에 충분히 가능했다. 심지어 돈을 남겨왔을 정도. 


숙소는 기온역에서 가까우니 어지간한 곳은 도보로 모두 가능했다. 

오호리공원을 또 가서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며 앉아있었고, 후쿠오카 성터까지 괜히 샅샅이 훑어 보았다. 크게 볼거리가 있는건 아니지만 이곳에 오면 어쩐지 마음이 편해진다. 

쇼핑을 좋아하지 않아 텐진을 별로 가진 않았지만, 280엔짜리 라멘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봤다. 현지인들로 북적였고, 맛 또한 상당히 괜찮았다. 짜고 비싸기만한 이치란 라멘에 비하면 훨씬 훌륭한 맛이었다.

걸어다니다 공원이 있으면 괜히 앉아서 쉬었고, 신사가 있으면 무작정 들어갔다. 

남들 다간다는 맛집같은 곳에는 별 흥미가 없기에, 그냥 내가 마음에 드는 가게에서 식사를 했고 저렴한 체인점에서 맥주를 마셨다. 


오호리공원인데 남자둘이서 왜 오리배를 타고 있는지?

후쿠오카성터에 올라 시내를 바라보니 가슴이 탁 트인다

280엔짜리 돈코츠라멘. 존맛.



덕후들의 성지인 일본이지만 난 의외로 애니메이션에도, 피규어에도, 기타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에도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과 술, 술자리에서 편하게 피울 수 있는 담배의 자유, 깨끗한 거리와 맑은 공기, 간단한 쇼핑 그리고 파칭코가 있기에 일본은 늘 가고 싶은 동네가 되었다.


난 맛집을 선호하지 않지만 우동맛집이 숙소에서 가까워서 한 번은 가보기로 했다. (타이라)

'그래, 맛집이 뭐 얼마나 맛있길래 사람들이 찾아가는지 확인이나 해보자' 라는 심산이었다.

이제 코너만 돌면 목적지인데 사람이 없다???

아니었다!!! 코너를 돌자마자 이미 늘어선 줄과 작열하는 태양. 

포기하고 갈까도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아직 오픈전이고 줄이 그리 길지 않아 금방 먹을 수 있을 것 같기에 기다리기로 했다.

난 세번째 순서로 입장했고, 가장 유명하다는 우엉튀김 우동을 선택. 오니기리도 하나 먹어보기로.

우선 비주얼은 합격. 국물은 담백한고 진한게 아주 만족스러웠지만 솔직히 면발은 그냥 중급 정도 느낌이었다. 어쩐지 면발은 체인점 우동이 더 쫀득하고 탄력 있었던 것 같다. 내 입이 싸구려라 잘 몰라서 그런다고 타박해도 소용없다. 

아무튼 다시 한번 소중한 경험을 했다. 고생해서 맛집을 가는 것도 다 여행의 재미이긴 하지만 목 매일 필요는 없다는 것.

정해진 순서와 코스대로 움직이면서 음식까지 정해져있다면 이게 무슨 여행이겠는가?

의외성의 기쁨을 만끽하는게 난 좋다. 

아무튼 매일 신나게 파칭코도 돌려댔고, 맛있어 보이는 조그마한 가게에서 라멘과 우동을 즐겼다. 

매일 밤 싸구려 술집에서 부담없이 안주시켜가며 소주, 사케, 맥주를 들이켰다. 


타이라 우엉튀김우동과 오니기리

간단한 싸구려 회안주

언제 먹어도 맛있는 가마보코

교자와 감자야채튀김

체인점 새우튀김우동. 면발이쥐기네.


꼭 뭔가 멋진 걸 봐야하고, 맛집을 클리어해야 하며, 나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이곳에는 다시는 안 올 것마냥 미친 듯이 돌아쳐야 하는 여행은 싫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과 장면을 만난다면 그게 멋진 풍경이고, 의외로 만족한 곳이 있다면 그곳이 맛집이며, 내가 현지인이 아닌 이상 어떤 여행을 해도 아쉬움은 남기 마련이다. 

2~3년 사이에 우후죽순 생겨나서 이제는 너무 넘쳐나는 각종 여행 프로그램, 맛집 프로그램들.

처음에는 신기하고 재미나게 봤지만 점점 신물이 나는 이유는 다 비슷한 컨셉의 프로그램과, 연예인도 모자라 가족의 지인까지 출연해서 먹고 즐기는 여행에 우리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예인들 한번 다녀가면 그곳이 마치 맛집 인양 소개하는 것도 너무 우습게 느껴진다. 

혼자 배낭여행해본사람들은 알 것이다. 많은 스탭과 가이드가 따라붙는 프로그램이 과연 진짜 여행인지?


가장 현실적으로 가볍게 떠나서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맛있게 먹고 신나게 즐기다 올 수 있고, 거리가 가까워서 접근성이 좋은 곳은 역시 일본이다. 최근 들어 여행객이 늘어나다 보니 숙소 가격이 꽤나 오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매력적인 곳임에는 틀림없다. 

스카이스캐너를 들락날락거리며 항공권을 열심히 검색하고 있는가?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교통편이 걱정인가?

모든 저가항공에서 쉴 새 없이 퍼다 나르고 있으니 항공권 걱정은 할 필요가 없고, 공항에서 시내까지 (하카타역 근처)는 지하철로 2정거장, 택시로 12000원 이면 충분하다. 

어쩐지 조만간 후쿠오카에 한번 더 다녀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거칠게 몰려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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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투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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